*덩게르크에서 히틀러가 멈춘 이유*
2차대전 당시 1940년 6월의 서부전선 전역에서 히틀러가 덩케르크에서 진격 중지 명령을 하달한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덩게르크에서 독일군을 중지시킨 이유로, 영국과 화해를 시도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진실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설사 그런 이유가 있다 하여도, 부수적인 효과 정도로 기대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 정도로 생각하면 될것 같습니다.
진짜 이유로는,,
1) 히틀러와 서부전선 사령부의 불안감
당시 서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 기갑사단은 전체의 10% 정도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그 대부분을 아르덴 지역에 배치하여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벨기에 지역으로 이동하자, 그 배후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도 예상치못한 기갑부대의 쾌속 진군이 계속되자, 서부전선 사령관인 룬트슈테트와 휘하 기
갑군 지휘관이었던 클라이스트, 클루게를 비롯하여 히틀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아직 이 시점까지 '기동전'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절이며, 이 당시 방금 언급된 장군들은 19세기식 기병대와 보병 전술의 사고가 남아있던 인물들입니다. 전차의 용도에 대해서 지금은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이론과 실제를 만들어나가는 과도기였다는 점을 잊어선 안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히틀러와 함께 후방에 있던 OKH는 계속해서 진격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는 히틀러-OKH-전선 현지 부대 간에 복잡하고 미묘한 역학관계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2) 영국-프랑스의 전차 성능과 아라스 전차전
히틀러를 비롯한 현지 지휘관들이 '계획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얼마 안되는 기갑부대'가 영국-프랑스의 예비부대에 옆구리를 급습당해 궤멸당할 우려를 하고 있던 차에 영국군이 아라스에서 1940년 서부전선에서는 거의 유일한 반격을 시도합니다. 참고로, 이 당시 아르덴에서 출발한 독일군 기갑부대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직진하다가 마른강(1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독일군을 저지했던 그 강입니다)을 기점으로 해서 90도로 오른쪽으로 꺾었습니다. 물론, 아직 벨기에 지역의 영국-프랑스군을 포위하기 위해서입니다. 벨기에로 들어간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당시 연합군에선 최정예 부대입니다. 그들은 벨기에게 주전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아뭏튼, 그런 상황에서 길게 늘어진 부대의 측면이 적군에 노출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그 상황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아라스에서 롬멜이 지휘하는 독일군 7기갑사단에 반격을 해왔습니다.
또 이 전투에서 영국군과 프랑스 군의 전차의 성능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독일군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독일군이 가진 전차 수는 연합군보다 적었고, 그나마 제대로 전차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대략 600량이 안됩니다. 나머지 2000여대 가까운 전차들은 기관총 2정의 1호 전차와, 20mm 기관포 및 7.92mm 기관총 1정을 장비한 2호 전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장갑 방어력도 연합군전차들이 월등했죠. 아라스 전투에서는 영국의 마틸다 전차를 상대할 독일 전차가 없어서 대공포대의 88mm 대공포를 끌어와 처음으로 대전차포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아라스 전투만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젖는다고, 각지의 독일군 전차들의 피해 상황이 당시 지휘관들이 보기엔 위험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안그래도 적은 병력에 적은 전차 수로 넓은 지역을 커버하려다보니 무리수가 따랐던 것입니다.
3) 급속한 전선 전개에 따른 부대 재정비의 필요성
2에서 언급한 마지막 부분과 관련하여, 5월 10일 개전 이래 약 2주간 독일군 지휘부도 당황할 만큼의 전진 속도로 인해 독일군 기갑사단들은 마구 흩어져 있었습니다.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정지명령이 하달된 5월 24일 까지 보병부대 상당수는 기갑부대의 전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인용하자면,, "이날의 결정은 분산된 기갑사단들이 다시 각자의 목표에 맞게 긴밀하게 집결할 필요가 가장 큰 요인이었으며, 룬트슈테트도 미리 작심했다시피 야전에서도 의외로 큰 반발은 없었다는 것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히틀러가 아주 비정상적으로 모든 장군들의 반대 하에서 독단적인 주장을 한건 아니었다." (채승병) 즉,
이 시점에서 독일군은 지난 2주 동안의 맹진격 이후의 재정비 필요성을 느꼈고, 그 시점을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4) 괴링의 호언장담 : 이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육군이 (연합군은 모르고 있었지만)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을때
괴링이 그럼 공군으로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나섭니다. 룬트슈테트 입장에서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덩게르크 앞에서 진격 중지 명령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그 시점에서 당시 지휘관들의 심정에 대한 이해, 전투일지에 대한 검토, 그리고 기갑부대 운용에 대한 과도기(대부분 사단-군단 이상의 장성급 지휘관들은 아직 구식의 교리와 마인드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았더라는)라는 점, 자신들도 예상못한 쾌속 진격에 대한 당혹감과 불안감 등..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즐겜 하십시요.
2001년 12월09일 파이퍼님이 작성하신 게시물입니다.
출처 : 토탈밀리터리 http://totalmilita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