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만이 교사인지 체크리스트
□ 수업이 시작됐는데 교과서 필 생각을 안 한다.
□ 피구할 때 규칙은 쟤가 어겼는데 나한테 화를 낸다.
□ 여러번 지시했는데 “아 잠시만요” 하며 이행을 미룬다.
□ 수업 중 학생이 계속 말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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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부 제 얘기였습니다.
타고나길 기가 약한 쭈굴이인 제가 고학년 반항아 에이스들을 맡으며 결국 모두 제 편으로 만든 방법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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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마찰이 잦아 힘든 선생님들께 ‘이런 방법도 있어요’하고 소개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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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지르기는 효과가 없다.
(1) 소리를 지르는 이유 중 하나는 분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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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상황>
“자 얘들아 조용히 하고 영상 보자”
(카리스마 선생님들은 이 발언에서 다 조용히 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만만이 교사에겐 어림없죠.)
“웅성웅성 킥킥”
“자 조용히~ 다른 친구들한테 피해되잖아~”
“웅성웅성 쿡쿡”
“(소리치며) 조용히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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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반은 조용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겁을 먹어서 조용해진게 아닙니다. 놀라서입니다.
짧으면 몇 분, 길어야 한시간입니다.
소리지르기의 가장 큰 단점은, 아이들의 면역력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이들은 심각한 사안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 ‘쌤 아직 화 안 났네~ 저정도 지시는 무시해도 된다구~’로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있는 힘을 다해 목소리를 더 깔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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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척 상황>
“영상 하나 보겠습니다.”
“웅성웅성 킥킥”
“(일시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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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학생들은 뭐지? 하고 교사를 바라봅니다. 모두 조용해질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때 학생들을 바라보지 말고 의자에 기대서 팔짱끼고 허공을 바라봅니다.
크리스탈식 화 참는 척 무표정이 필요합니다.
모두 조용해지면 허공을 보며 한마디 합니다. 목소리는 최대한 건조하게 깔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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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든 사람 일어나” (평소에 경어체를 쓰는 이유는 지금 반말을 해서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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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눈치보다가 한 두명씩 일어납니다. 계속 기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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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 공부는 포기합니다. 상하관계가 무너져서 일어난 일이기에 쎈척타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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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착한 아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당황하지말고 계속 기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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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야 할 친구들이 안 일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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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일어나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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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나가” 아이들이 우르르 뒤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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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탁으로 나갑니다.
이때 류준열식 무표정으로 뒤에 선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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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사가 할말은 “영상 보는데 떠들면 안되지”가 아닙니다.
분명히 짝다리 짚거나 주머니에 손집어 넣거나 벽에 기댄 아이가 있습니다.
상하관계부터 다시 정립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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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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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기댄 건 똑바로 선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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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훈육 상황이 만들어진 겁니다. 하지만 “영상 보는데 떠들면 안되지”가 초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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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떠들어놓고 늦게 나오는거지?”
“잘못을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려워?”
“그래도 잘못 인정하고 일어난 친구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인정하는 용기가 멋있어. 너넨 멋있는 애들이야.”
“앞으로 잘할 수 있지?” (네)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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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아이들을 혼내려고 불러 세운 게 절대 아닙니다. 상하관계를 명확히 하고 칭찬을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로 ‘영상 보는데 떠들면 안되지’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아이들은 긴장되는 침묵의 시간동안 상하관계를 마주했고 선생님의 ‘선’을 확인했습니다.
‘이 선을 넘으면 안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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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날 줄 알고 긴장했지만 잔소리는 안 듣고 오히려 용기 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다음부터는 영상 틀기도 전에 아이들끼리 조용히하자는 말이 나옵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문제상황에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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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쭈굴이인 저는 손이 벌벌 떨려서 주머니에 손 넣고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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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보는 상황을 예시로 들었지만
비슷한 대부분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수업 중, 아침시간 중, 규칙설명 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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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적용하다보면
[화 참는 척 허공보기]-[선생님이.. 한번.. 참을게..?]로 짧게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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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2장 ‘소리지르기는 효과가 없다’를 소개했습니다. 다음에 또 3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만만이 선생님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PS) 댓글 하나 하나 너무 감사합니다. 문제아동 지도에 곤란을 겪는 지인들에게 우리는 카리스마가 없으니까 있는 척이라도 해야된다며 주저리 주저리 하던 말들인데, 재미있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